엘르 코리아 2023년 12월호 - 이효리의 걸음이 완성한 궤도 (인터뷰 有) ELLE KOREA 2023.12

2024. 8. 19. 05:51화보, 인터뷰 Photoshoot & Interview/2020-현재

 
 
나라는 사람 자체가 지금껏 만들어온 내 인생의 가치예요. 그건 흔들릴 것 같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언제나 비정형의 길을 자신있게 걷는 이효리. 그 날카롭고 유연한 걸음이 완성한 하나의 궤도.
 

요즘 이효리는 어떤가요. 즐겁고 행복한지 혹은 걱정이나 근심도 있는지

재밌어요. 예전에는 어렵거나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까지도 말이죠. 확실히 쉬는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나이를 먹어 둥글둥글해진 건지(웃음), 날카로운 부분들이 꽤 누그러졌달까요. 
 
제주를 잠시 떠나 제법 오래 서울에 머물고 있어요. 지금 이 도시는 어떻게 다가오나요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많아졌더군요. 새로 생긴 식당과 가보지 않던 카페에도 가요. ‘씽씽이’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닙니다. 무엇보다 서울 친구들이 엄청 멋있어졌더라고요? 사람 구경도 재밌어요.

 
6년 만에 새 디지털 싱글 <후디에 반바지>를 냈습니다. 오랜만에 만끽한 무대는 즐거웠나요
해외 공연도 다녀오고, 2023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무대에도 서고, 완선 언니와 정화 언니 콘서트 게스트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에요. 사실 맛보기 정도죠. 아직은 신곡보다 예전 노래들 위주로 부르고 있는데요. 조금씩 무대에 대한 감을 찾아가고 있어요.
 
 
베트남의 뮤직 페스티벌 ‘젠 페스트’ 무대에 헤드라이너로 서기도 했습니다. 이날 ‘헤메코’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어요
그동안 저도 모르게 나이 생각을 많이 했나 봐요. 지나치게 짧은 옷이나 몸에 달라붙는 핏에 나름 조심스러움이 있었거든요. 원래 내게 잘 어울리는 옷들인데 말이죠. 근데 그렇게 입으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원래 제 것 같은 옷과 요즘 유행한다는 스타일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는데, 결국 제 옷을 입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자기표현에 조심스러운 이효리라…. 의외인데요
자기 몸의 변화가 크게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저도 셀룰라이트가 보이고 근육량이 줄어 말라 보였어요. 어릴 땐 허벅지가 가늘어지는 걸 참 싫어했는데(웃음).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니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지난 몇 년간 일상에서 보는 몸과 무대에서 보이는 몸의 간격이 크다고 생각했나 봐요. 좀 더 과감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과거 이효리처럼 더 세고 강렬한 컨셉트로 컴백하길 기대했을 거예요. 그들이 기억하는 이효리와 지금 이효리의 경계에서 꽤 고민이 깊었겠습니다
막상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좋아해줄지 고민해 보니 잘 모르겠더군요. 대부분 과거에서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지만, 막상 변하면 예전을 그리워하기도 하죠. 사랑받던 모습을 지키면서 새로워지기란 꽤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뭐든 해봐야 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후디에 반바지’를 해보고, 어떤 부분이 별로였다면 다음엔 또 다른 걸 해보면서 더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명쾌하네요. 올여름 <엘르> 인터뷰로 만난 엄정화도 비슷한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요. 대중은 예전 모습을 기억하고 좋아하지만, 그건 지금 내 모습이 아닐 수밖에 없죠. 예쁘다고 칭찬받았던 무대의상을 다시 입는다고 그 느낌이 나지 않고요. 하지만 대부분  리즈 시절을 기억하고 영원히 그곳에 머무를 거라고 기대하니까. 언니도 그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이라 늘 용기를 내요. 결론은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고요. 정화 언니도 물론이지만 이름이 브랜드가 된 분들이 있잖아요. 이제 그 사람이 뭘 입고 나와도 그 가치는 훼손되지 않아요. 최근작이 좀 안 되더라도, 어느 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나와도 그는 엄정화이고, 여전히 멋있는 사람이지 그 잠깐에 모두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미 당신은 ‘그런 사람’의 상징인데요
저도 이제 그런 사람이 된 건가요(웃음)? 어쨌든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물론 제가 싫다는 사람도,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제껏 만들어온 제 인생의 ‘가치’예요. 그건 흔들릴 것 같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얼마 전 엄청 못생기게 나온 사진, 아시죠(웃음)? 재밌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싶어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요.
 
 
이름에 대한 기대치에 도망가고 싶었던 때도 있었겠죠. 언제부터 자유로워졌나요
한동안 평범한 삶을 살았잖아요. 비연예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다가 다시 연예계 활동을 하니까, 꼭 연예인이 아닌데 활동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한 사람이 특정 세계에만 살다 보면 그곳에 갇혀버리기도 하는데, 저는 10년을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봤으니 자유로울 수 있달까요. 과거에는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화장 안 했을 때 사진 찍자고 하면 굉장히 불편하고 큰일로 느껴졌는데요. 지금은 그런 것에 편안함이 생기면서 뭐든 다 좋은, 약간 이상한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지금 한창 활동하는 분들은 제 말에 공감 못 할 거예요(웃음).
 
 
오늘 함께한 버버리와도 인연이 깊죠
처음 산 향수가 버버리였는데, 그 향이 아직도 생각나요. 부모님 댁에 제가 쓰던 향수병이 그대로 있어요. 다시 뿌리자마자 추억이 떠올랐죠. 버버리는 과거를 추억하면서 동시대와 어우러지잖아요. 클래식과 변화를 한데 엮으며 세상에 동화되는, 제가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해요.
 
 
SNS 라이브를 통해 “스태프도 나와 같이 20년을 늙었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이제는 다른 것 좀 해보자고 얘기하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는 고민을 얘기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변화를 시도하는 중인지, 아니면 변화하면서도 오래 함께한 사람들을 지켜가는 방법을 찾았는지
사실 변화하지 못한 건 100% 나인데 스태프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 같아요. 제가 제시한다면 얼마든지 함께 나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전전긍긍하며 소심함에 갇혀 있었던 거죠. 괜히 서운해할까 봐 말도 못 하고, 바꾸지 못했던 부분도 가볍게 제안하면 ‘OK’하고 ‘쿨’하게 넘어갈 일이거든요. 변화에 자신 없었던 건 저였죠. 이제 변하려고요. 어떤 분야에 특화된 아티스트가 있으면 그 분과 새롭게 작업해 보고, 다시 오래된 스태프들과 편하게 작업하고, 그 가운데 서로 영감을 얻고요. 자신을 좀 더 높게 평가하면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이효리의 노래는 항상 당시의 이효리 모습을 반영해요. 요즘 힘을 받는 곡은
‘미스코리아’. 직접 쓰기도 했지만 제게도 부인과 며느리, 딸, 톱스타, 요가 선생님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어요. 가끔 여성들은 주어진 이름이 너무 많아 힘들고 부담스럽기도 하죠. 그럴 때 필요한 건 존재의 자신감입니다. 그냥 자신이 최고라는, 모든 초점을 나에게 두자는 메시지가 제게도 필요했어요. 오히려 전보다 지금 불렀을 때 더 좋은 곡인 것 같아요.
 
 
늘 흥미로운 건 당신이 상대를 대하는 화법이에요. 화끈하고 솔직한 것 같으면서 속 깊고 다정하죠
돌려 말하거나 거짓말하는 건 별로예요. 예를 들어 예쁜 친구들이 “언니, 너무 예뻐요”라면 “나랑 얼굴 바꿀래?” 꼭 그래요(웃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가면 될걸! 위트와 솔직함을 추구합니다. 명언집이나 니체의 말, 부처님의 말도 자주 읽어요. 외모 모니터는 잘 안 하는데, 제가 한 말에 대한 모니터는 자주 해요. 평소 언어의 무게를 깊게 생각해요.
 
 
신곡 뮤직비디오 스틸 사진과 함께 “나의 과정에 더 이상 애를 쓰다, 악에 받치다, 죽도록 같은 아픔의 말들은 없었다. 그리고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말을 SNS에 쓰기도 했습니다. 취해서 올렸다며 농담했지만, 지금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사랑하죠. 그땐 사람들에게 늘 자신감을 갖자고 말하는 노래를 불러왔어요. 솔직하자, 당당하자, 나를 따라와라….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노랫말처럼 완벽한 상태였다면 그렇게 주창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미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결국 그 노래들은 타인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제게 하는 얘기였구나 싶어요.
 
 
그럼에도 요즘 사소하게 애쓰는 일이 있다면
남편에게 잘해주려고요. 외로울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혼자 지내는 시간에서 오는 외로움도 있겠지만, 남편도 음악을 잘하는 뮤지션이니까요. 저희 가족은 개들 때문에 누군가 나가면 누군가 집을 지켜야 되는 시스템이에요. 한바탕 활동하다 이제 오빠에게 다시 바통 터치하려고요. 요새 꿈에 자주 나옵니다(웃음). 가정 있는 여성들이라면 공감할 거예요. 자기 일을 잘하고 싶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드는 죄책감 같은 감정. 근데 그건 사랑스러운 마음이에요. 내 일도 하고, 집과 남편도 신경 쓰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여기면 좋겠어요.
 
 
최근 한부모여성 지원을 위해 기부한 소식도 반가웠어요. 다양한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온 당신이지만 최근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었나요
만약 남편이 반려견을 돌보지 않으면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한부모여성에게 일하는 여성으로서 공감했어요. 맞잡을 손이 부족해 능력 있는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건 사회적 손실입니다. 좀 더 당당하고 편안하게 기량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작은 응원이었습니다.
 
 
이효리가 요즘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섹시 퀸. 언젠가부터 제게서 떠나간 말이더라고요. 다시 붙잡아 와야죠. 요즘 그냥 기대고 싶은 누나이자 조언받고 싶은 언니라던데? 그래도 ‘언니’라는 말은 들으면 늘 좋잖아요 그럼요. 언니는 가끔 철딱서니 없어도 되잖아요(웃음). 저를 언니라 부르는 수많은 동생들은 저를 지탱하고 잡아주는 존재예요. 무겁지 않게, 제가 점점 더 가벼워질게요.
 
 
효리 언니, 슈퍼스타, 아내, 반려견의 보호자…. 이 많은 이름과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효리는 세상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이효리가 지금 나아가고 싶은 세상은
지난 10년간 훌쩍 다녀왔잖아요. 이제 다 같이 있고 싶어요. 소통하며 서로 부족한 점을 배워나가면서요. 위로 날아가기보단 땅에 발붙이고 서서, 혼자보다 함께 걷고 싶어요.
 

Credit

  • 패션 에디터 김지회
  • 피쳐 에디터 전혜진
  • 포토그래퍼 박종하
  • 스타일리스트 이지혜
  • 헤어 스타틸리스트 조미연
  • 메이크업 아티스트 황희정
  • 네일 아티스트 임미성
  • 세트 스타일리스트 전예별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어시스턴트 김민숙

 

 

이효리의 걸음이 완성한 궤도 - STAR

이효리의 걸음이 완성한 궤도 - 나라는 사람 자체가 지금껏 만들어온 내 인생의 가치예요. 그건 흔들릴 것 같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언제나 비정형의 길을 자신있게 걷는 이효리. 그 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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